"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이 서시를 이완용이라는 자가 지엇다면 사람들은 큰 감동을 받고 금강경 표현대로 수지독송할까? '죄는 죄고 시는 시로 구분하여 봄이 올바른 자세인가?'라고 물으면 그렇지 않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할 것이다. 요즘은 일본을 찬양하는 토착왜구 같은 정신 나간 자들이 많다보니 절대 다수는 아닐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치고 과거에 급제할 만큼 머리 좋고 한 때 독립협회 활동도 한 이완용이에 대해 공과를 구분하지 않고 비난하고 있고, 이완용이가 서시를 설령 지엇다고 해도 그 시를 마음에 간직하거나 그 시를 교과서에 싣지도 않는다. 왜 이완용이에 대해 과거 행적에 대해 공과를 구분하지 않는가? 이유는 반드시, 꼭 지키고 넘지 말아야 할 최후의 기준을 넘어 섰기 때문이다. 기준이란 지켜야할 내용이며 국가와 사회에선 실정법이 아닌 자연법이며 불교에서는 붓다의 계율이다. 대반열반경에 '승가 구성원들이 원한다면 아주 작고 사소한 계율은 없앨 수 있다.(Saṅgho mamaccayena khuddānukhuddakāni sikkhāpadāni samūhanatu)'라고 되어 있다.
이는 붓다께서 앞으로 다가올 시대와 지역의 변화를 이미 알고 계셨기에 인도와 다른 거주 조건과 맞지 않아 생길 수 있는 계율의 분란을 막기 위한 혜안이셨다. 이런 붓다의 유훈을 침소붕대하고 아전인수로 확대 해석하는 짓을 하지말아야 하며 또한 넘지 말아야할 마지막 기준이 되는 선을 어기는 짓은 말아야한다. 한국과 붓다 당시 인도와 다르니 탁발하지 않고 시주를 받아 절에서 만들어 공양하는 것이거나 오후 불식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비난은 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지키면 한국 일반 재가자들은 올바른 수행자라고 그를 큰스님이라 존경하고 따른다. 붓다가 설한 'khuddānukhuddaka'라는 말을 수행자들 니들 편한대로 해석하여 붓다를 욕보이지 말고 지키지 못하는 자들은 환속해서 다른 일에 종사할 것을 권한다. 골프 치고 싶고, 여자 사귀고 싶고, 돈 벌고 싶으면
계율을 왜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앞 서 게시한 붓다의 가르침의 의미를 살피며 번역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