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緣起)는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이다 - 각묵스님"
◎ 집성제(集聖諦, dukkha-samudaya-ariyasacca) -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samudaya [saṃ+udaya] 1. 대두, 기원 dukkha° 병의 기원, ariya--sacca 2. 뿜어내는, 광채 (pabhā°) 3. 생산, 수입
집성제(集聖諦)의 집(集)이라는 한자 때문에 오해가 있는 성제(聖諦)가 집성제로 집(集)은 집착이 아니라 괴로움의 모임 즉 괴로움의 원인을 뜻한다.
집성제는 괴로움(고, 苦)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으로 갈애(taṇhā)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갈애는 3가지로 설명된다.
➀ 욕애(慾愛, kāma-taṇhā):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
➁ 유애(有愛, bhava-taṇhā): 상견(常見)과 함께하는 존재에 대한 갈애
➂ 무유애(無有愛, vibhava-taṇhā): 단견(斷見)과 함께하는 비존재에 대한 갈애
◎ 갈애
‘갈애(渴愛)’라 번역한 딴하(taṇhā)는 √tṛṣ(목마르다)에서 파생된 여성명사이다. PED에서 ‘lit. drought, thirst; figuratively, craving, hunger for, excitement, the fever of unsatisfied longing.’이라 설명되듯이, 문자적으로 타는 목마름이나 갈증을 뜻하며 비유적으로 쓰여서 ‘자극에 대한 갈망과 갈애, 채우지 못한 열망의 열병을 뜻한다. 즉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을 때 의 강렬한 욕구와 유사하게 감각대상들을 애타게 구하는 것을 그 특성으로 하며, 끊임없는 재생을 일으키는 마음의 상태이다.
12연기에서는 여섯 감각기능(六根, indriya)들이 외부의 감각대상(六境, visaya)들과 맞부딪쳐 감각접촉(phassa)이 일어나고, 이러한 감각접촉에서 느낌(vedanā)이 일어나고 이러한 느낌에서 이 갈애가 일어난다. 그리고 이러한 갈애는 다시 집착(upādāna)을 불러일으킨다.
붓다께서 정각을 처음으로 선포하실 때(S.v.420 ff; Vin.i.10) 괴로움의 근원인 갈애는 성스러운 도로 제거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출세간의 목적을 이룰 수가 있다. 마치 육체적인 갈증이 일어날 때 이 갈증을 채워주고, 없애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듯이, 정신적인 갈애도 완전히 뿌리 뽑고, 없애지 않으면 열반을 이룰 수가 없다. 이러한 갈에는 중생을 윤회(saṃsāra)의 사슬에 묶어놓아 계속해서 나고 죽는 과정을 반복하도록 한다. 이러한 과정은 아라한과 즉 열반을 얻어 갈애가 종식될 때 까지 반복된다.
갈애는 일어나는 형태에 따라 ①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慾愛, kāma-taṇhā), ②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vibha-taṇhā), ③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無有愛, vibhava-taṇhā)의 셋으로 분류하기도 하고 눈, 귀 등의 일어나는 장소에 따라 6가지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18가지가 되고 안팎의 장소에 따라 6가지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18가지가 되고 안팎의 각각으로 36가지가 되고 다시 과거, 현재, 미래로 모두 108가지가 된다. 연기의 구성요소들 가운데서 생사유전(生死流轉)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 바로 갈애이다. 그래서 사성제(四聖諦)에서도 고의 원인을 밝히는 집성제(集聖諦)에서 갈애를 괴로움의 원인으로 들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주석서에서는 세 가지 갈애(taṇhā)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慾愛, kāma-taṇhā)’란 다섯 가지의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의 동의어이다.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bhava-taṇhā)’란 존재를 열망함에 의해서 생긴 상견이 함께 하는 색계와 무색계의 존재에 대한 탐욕과 선정(jhāna)을 갈망하는 것의 동의어이다.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無有愛, vibhava-taṇhā)’라는 것은 단견이 함께 하는 탐욕의 동의어이다.”(DA.iii.800).
◎ 상견(常見, 사싸따딧띠. sassata-diṭṭhi)
‘상견(常見)’으로 번역한 사싸따딧띠(sassata-diṭṭhi)는 sassata(영원, 항상함)+diṭṭhi(견해)의 합성어이다. 영혼이나 자아는 절대 죽거나 분해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한다고 믿는 삿된 견해이다. 즉 거친 육신이 소멸되어도 살아있는 실체인 영혼은 소멸되지 않고 다른 새로운 몸속으로 들어가서 계속해서 존재하며, 설령 세계가 무너지고 파괴될지언정 영혼은 영원히 존속하고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교외의 다른 종교는 대부분 이러한 상견을 취하고 있다. 요컨대, 영혼이나 자아가 죽은 뒤에도 소멸하지 않고 다시 새로운 존재로 옮겨간다고 보는 믿음들은 모두 상견이다. 그리고 이 상견과 결부된 갈애를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bhava-taṇhā)라고 한다.
◎ 단견(斷見,우쩨따딧티. uccheda-diṭṭhi)
‘단견(斷見)’으로 번역한 우쩨따딧티(uccheda-diṭṭhi)는 uccheda(끊어짐, 멸절)+diṭṭhi(견해)의 합성어이다. 사람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으로 다시 태어나는 법이 없으며, 선악이라든가 과보는 없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도덕적 허무론이다. 이러한 단견은 12연기의 인과관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이 단견은 쾌락주의와 유물론적 인생관의 기초가 되고, 사람들로 하여금 악행을 짓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이 단견과 결부된 갈애를 비존재에 대한 갈애(無有愛, vibhava-taṇhā)라고 한다.
◎ 멸성제(滅聖諦, dukkha-nirodha-ariyasacca)
nirodha [BSk. nirodha, to nirundhati, cp. nirujjhati & niruddha] 압박, 억제; 파괴, 중지, 소멸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 멸성제는 이러한 갈애의 완전한 소멸인 열반(nibbāna)의 실현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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